아시아 북 어워드
올해를 빛낸 아시아의 책
일인칭 가난 : 그러나 일인분은 아닌
한국, 안온, 도서출판 마티
선정 이유
가난의 서사가 없는 출판은 성장을 멈춘다
‘힐빌리의 노래’ 아시아판이라고 부를만한 놀라운 작업
어찌 보면 책은 일개인이 만들어낸 말과 글의 더미일 뿐이다. 그런 책을 만드는 출판이 모두에게 가치 있는 이유는, 출판을 통해 개인의 서사가 시대와 사회 전체를 관통하는 서사로 변신하기 때문이다. ‘가난’이라는 사회적 단어 앞에 ‘일인칭’이라는 개인의 수식어가 붙은 이 책은, 그 놀라운 변신을 보여주는 증거물이다.
개발도상국 시절을 벗어나기 시작한 아시아 국가들은 물론, 기술혁명으로 인해 엄청난 부가 생산되는 오늘날의 선진국들이 겪는 난제 중의 난제, 바로 상대적 빈곤이다. 현대 사회는 절대적 빈곤으로부터는 벗어났지만, 상대적 빈곤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몰라 헤매고 있다. 이로 인해 사회 전체의 성장 동력은 갉아 먹히고 있다.
안타깝게도 상대적 빈곤의 정체를 제대로 드러내는 서사는 매우 불충분하다. 한편에서는 가난에 대한 지극히 감정적이고 사적인 이야기들이 있고, 한편에서는 가난에 대한 지극히 사회과학적 분석들이 있다. 이 두 개의 접근 사이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들은 답을 찾지 못하고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왜 사회보장제도도 있고, 공공임대주택도 있는데 할머니와 아버지는 자살했는가?” “왜 대학도 다니고 가족도 있고 직업도 있는데 ‘나’는 미래가 없다고 느끼는가?”
『일인칭 가난』은 20여 년간 기초생활수급자로 살아온 97년생이 쓴 자전적 에세이로, 아시아의 많은 국가들이 직면하고 있는 상대적 빈곤의 실체를 정확하게 파고드는 책이다. 33개의 짧은 일화, 고작 168페이지의 작은 분량이지만 이 책의 성취는 사적인 접근과 공적인 접근을 하나로 단단하게 접합시킨 서술에 있다.
이 책은 아시아 국가들에서 보편화된 사회안전망 속에서 가난한 이들이 어떻게 성장하여 어떤 사회구성원이 되는지를 드러낸다. 가족공동체의 규율보다 생활보장제도, 교육방송, 급식지원, 민간장학회 등의 사회복지제도에 좌우되는 성장기와, 또래 친구들보다 경찰, 주민센터 직원, 교사와 더 강렬하게 관계 맺는 사회화 과정이 정확하게 기술된다.
뉴스나 영상이 아닌 ‘책’의 형태로 만들어졌기에 더 단단해진 새로운 가난의 서사. 이 작은 책에 수많은 독자들이 환호한 이유가 분명히 있다. 감히 아시아의 『힐빌리의 노래』라고 불러도 좋을 책이다.
“부자가 되려는 사람들은 그토록 많은 책을 쓰고 팔고 사는데, 가난이라고 못 팔아먹을까. 더 쓰이고 더 팔려야 할 것은 가난이다.” 이 책에 담긴 저자의 말은 출판이 독자들에게 사랑받아온 원래의 역할이 무엇이었는지를 되짚어보게 한다.
출판은 시대의 초상이다. 그 역할을 제대로 해낼 때 출판은 사랑받아왔고, 존재하는 이유를 긍정 받았다. 모든 시대마다 가난의 서사는 없을 수 없고, 각 시대의 가난의 서사를 제대로 발굴할 때 책과 출판의 가치는 긍정되고 성장해왔다는 진실을 새삼 일깨우는 소중한 작업물이다.
출판사 소개
도서출판 마티(MATIBOOKS)
마티(μάτι, mati)는 그리스어로 ‘눈’이라는 뜻으로, 시각(성)의 힘과 깨어 있는 이성을 상징한다. 인문, 사회, 건축, 음악 분야에 고르게 관심을 두고 있다. 밝은 눈으로 현실을 보고, 인식과 실천의 변화를 일으키는 책을 만들고자 하며, 애써 눈을 감고 있는 구석이 없는지 돌아보고 아직 충분히 말해지지 않은 이야기들을 찾으려 노력하고 있다.
저자 소개
안온(安穩, An-On)
1997년생. 20여 년간 기초생활수급자로 살았다.
어렸을 적 꿈은 하루빨리 돈을 버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사실은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돈이 먼저였다. 스무 살 이후에는 언제나 글 쓰는 시간보다 돈 버는 시간이 길었고, 지금도 그렇다. 그 가난하고 지난한 날에서 지나간 불온을 기록하고자 이 책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