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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를 빛낸 아시아의 책

노비와 쇠고기 : 성균관과 반촌의 조선사

한국, 강명관, 푸른역사, 2023

선정 이유

역사를 읽는 방법은 다양하다. 왕조를 중심으로 시대를 구분하기도 하고, 인물이나 사건의 추이를 따라 파악하기도 하는 식이다. 이 중 키워드를 중심으로 역사를 읽어내는 방법은 꽤나 유용하다. 흐름을 놓치지 않으면서 ‘세밀화’를 그려낼 수 있어서다. 이 책의 지은이 강명관 전 부산대학교 교수는 이미 풍속화, 열녀 등을 중심으로 주목할 만한 성과를 쌓았고, 그리하여 고정 독자층을 확보한 이 방면의 대가다. 그가 이번엔 ‘노비’와 ‘쇠고기’란 낯선 조합으로 조선사를 파고들었다. 음식문화사로 보일 법하지만 실상은 조선의 정치사회사를 관통하는 역작이다. 생계를 위해 편법으로 소를 잡아 팔던 성균관(최고의 국립 교육기관) 공노비들이 임병양란(壬丙兩亂) 이후 재정이 파탄 난 국가에 의해 수탈당하고, 한편으로는 저항한 역사를 그려낸다.

눈이 번쩍 뜨일 뜻밖의 사실, 방대한 사료로 증명

조선은 내내 소의 도축을 금하고, 쇠고기를 먹은 사람까지 처벌했다. 조선이 소의 도축과 식용을 금지한 것은 농업 국가라 소를 농업 생산을 위한 축력畜力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세종 6년인 1424년에는 소와 말을 매매해 도축한 경우에는 장杖 100대에 처하고 가산을 몰수했다. 쇠고기를 먹었을 때 태笞 50대에 그치는 게 가볍다는 형조의 지적도 있었다. 그러나 도축은 근절되지 않았다. 지배층부터 쇠고기를 즐겼다. 쇠고기를 좋아해 날것을 씹기까지 한 연산군이 대표적인 예다. 그는 소의 도축에 대한 금령을 풀었고, 그의 통치 기간에는 모든 연회에서 쇠고기가 사용되었다. 17세기에 서울에는 속전을 물고 쇠고기를 파는 ‘현방懸房’이 공공연히 존재했다. 책은 현방을 운영하던 반인泮人과 이들이 살던 반촌 이야기를 촘촘히 풀어간다. 성균관 주변의 ‘반촌’에 살던 그들이 고려 시대 성리학을 처음 전한 안향이 기증한 노비에 뿌리를 두었다든가, ‘제업문회’란 일종의 학교를 자체적으로 운영하기도 했다는 등 여느 역사책에서는 만나기 힘든 사실을 소개한다. 1866년 병인양요 때는 반인들이 자비로 무장을 갖추고 참전했다는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반인들은 1년에 여섯 달을 입역入役하고, 7~8세부터 입역하는가 하면 성균관 유생들에게 회초리를 맞아가며 봉사했다는 수탈상도 그려진다. 노예들이 기록을 남겼을 리 없으니 다양한 사료를 꼼꼼히 뒤져낸 저자의 공력은 감탄스럽다. 그런가 하면 한반도 음식문화 중심에 쇠고기가 있었으니 불교국가인 고려에서도 개성 시전에서 고기를 팔았다든가, 18세기 조선에선 해마다 약 20만 마리의 소가 도축되는 ‘쇠고기 국가’였다는 사실 등도 만날 수 있다.

번득이는 예리한 비판의식

현방, 즉 조선의 공식적 쇠고기 판매는 ‘눈 가리고 아웅’이었다. 농사도 장사도 할 수 없는 성균관 공노비들의 생계수단을 위해 허용한 현방은 점차 형조刑曹, 사헌부司憲府, 한성부漢城府 등 삼법사三法司의 먹잇감이 되었다. 이들 기관은 실무관리에게 줄 급여를 마련하기 위해 불법행위 단속을 빌미로 가혹한 속전(贖錢·죄를 면하기 위해 바치는 돈)을 물렸다. 『승정원일기』 『비변사등록』 등 문헌을 종합하면, 한해 징수된 속전은 1704년(숙종 30) 7700냥이었다가 1733년 1만3800냥, 1793년(정조 17) 2만1800냥으로 늘었고 19세기에는 4만7000냥까지 치솟았다. 결국 성균관까지 ‘현방 등쳐먹기’에 가담했으니 조선 후기 성균관은 현방에서 수탈하는 돈으로 운영되었다. 이를 두고 지은이는 “사족 체제의 정점에 있던 자들은 성균관을 존중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했지만 실제 재정이 무너지는 것을 목도하고도 근원적인 대책은 관심 밖이었다고”고 비판한다. 무엇보다 “반인과 현방의 입장에서는 삼법사와 성균관으로부터 이중의 수탈을 당하게 된 것이었다. 그것은 조선 사족체제의 최고 교육기관과 경찰기구가 반인과 현방의 수탈 위에 존립할 수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갈파한 대목은 이 책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책은 역사서로는 이례적으로 각종 수치 자료까지 인용했기에 읽기 만만치 않다. 하지만 쇠고기를 중심으로 조선사를 관통하면서 곳곳에 담긴 흥미로운 이야기 덕분에 조선 정치 비판서로도, 풍속사로도 공들여 읽어볼 가치가 충분하다. 무능한 지배층과 수탈당하는 백성이라는 뻔하디 뻔한 소재를 ‘쇠고기’라는 먹음직스러운 키워드로 맛깔나게 이끄는 책이다.

출판사 소개

푸른역사(Purunyoksa)
기존의 딱딱하고 어려운 역사서가 아닌 대중의 눈높이에 맞는 새로운 역사서를 만들겠다는 목표로 출판계에 첫발을 내디딘 후 28년여가 지난 지금까지 역사서 출판만을 고집하고 있다. 그 결과 역사학계와 독자를 연결시켜주는 매개자로 굳건히 자리 잡았고, 역사학계의 지평을 넓히는 데도 일조했다. ‘역사 대중화’를 꾀한 선발 주자인 만큼 푸른역사는 앞으로도 독자 여러분이 푸르고 깊은 역사의 숨결을 맛볼 수 있도록 역사 분야에서 새로운 주제 및 필자를 개발하는 데 매진할 것이다.

저자 소개

강명관(姜明官, Kang Myeong Kwan)
부산대학교 한문학과 명예교수. 조선 중기 서울의 도시적 분위기에서 활동했던 여항인의 역사적 실체와 문학을 검토해 한문학의 지평을 넓혔으며, 방대한 한문학 텍스트에 근거한, 풍속사, 사회사, 음악사, 미술사를 포괄하는 다양한 저서들로 독자에게 다가가고 있다. 근래에는 조선시대 지식의 생산과 유통이 인간의 사유와 행위로 연결되어 어떤 인간형을 만들어 내는가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저서로 《이타와 시여》, 《가짜 남편 만들기》, 《조선 풍속사》(전3권),《열녀의 탄생》, 《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 《조선의 뒷골목 풍경》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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